10. 하데스타운 [돌문예]

2022. 5. 30. 22:46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처음으로 뮤지컬을 보고 왔다. 수업 덕분에 그리스 신화에 관심도 생겼는데 부산에 하데스타운이 공연한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예매했다. 

 

내가 본 회차의 캐스트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재해석해서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신화에서의 님프 에우리디케와 달리, 뮤지컬 속 에우리디케는 항상 굶주림을 겪던 바람 따라 떠도는 여인이다. 요리사로 일하는 가난한 음악가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중 봄과 여름에 지상에 나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페르세포네가 하데스 때문에 아주 잠깐 지상에 왔다가 다시 하데스타운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데스타운은 점점 공업화되어가고 지상보다 더 밝고 더워졌다며 페르세포네는 "이건 정말 정상 아니야"라며 한탄하며 술독에 빠진다. 하데스는 계속 공업화되는 지하의 모습은 페르세포네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만든 것이라 말한다.

 

 

페르세포네가 일찍 하데스타운으로 돌아가 봄과 여름이 사라져 더욱 살기 팍팍해진 지상에서 봄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오르페우스가 노래를 만든다. 그 사이 에우리디케는 풍족하게 살게 해 준다는 하데스의 꾀임에 넘어가 하데스타운으로 가는 기차에 타게 된다. 신화의 내용과 같이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하데스타운으로 떠난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앞에서 그가 만든 노래를 부른다. 오르페우스가 만든 그 노래는 사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사랑에 빠졌을 때 불렀던 노래였고,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계기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춤을 추며 관계를 회복한다.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감동했지만, 그래도 지하의 법칙을 거스르게 할 수 없는 하데스는 지상에 도착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걸고 오르페우스와 페르세포네를 보내준다. 하지만 그 결말은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끝이 난다. 오르페우스는 운명의 세 여신의 부추김에 뒤를 돌아보게 되고, 오르페우스 뒤에 있던 페르세포네는 다시 지하로 가게 된다.

 

 

극 중에서 나레이터 역할인 헤르메스가 이렇게 노래한다.

아주 오래된 사랑 이야기와 슬픈 노래는 이렇게 흘러가지.
중요한 것은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
내 친구에게 배운 교훈이죠.

 

 

그리고 다시 뮤지컬의 첫 부분이 반복되며 끝난다.

 

 

 

 

뮤지컬에서 나오는 산업화된 하데스 타운 그리고 하데스의 노래에서는 현대 자본주의의 냄새가 물씬 났다. "가난이 우리의 적. 못 가진 사람들은 우리 것을 탐하지. 우리 자유롭기 위해서 벽을 높이 쌓는다."는 노랫말에서도. 고전을 재해석해서 지금 현실세계의 문제를 고발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는 신화에서도 뮤지컬에서도 결국은 비극이다. 하지만 헤르메스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감히 산 사람이 지하세계에 연인을 찾으러 가는 것을 누군가는 어차피 실패할 것이라 시도조차 하지 않겠지만 그러는 이에게는 기회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뮤지컬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넘버인 Epic III

F1963에 갔을 때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간 전시에서 맘에 드는 작품을 만나서 그 작품에 대해 느낀 점을 써 보려 한다.

 

유은석 작가의 <우린 때론 너무 치열하지 않나>라는 작품이었다. 마블 유니버스 히어로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가 심각한 표정으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뿅망치 게임을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우리 모두는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문제로 너무나 괴롭고 치열하게 노력했지만 문제의 해결여부와는 관계없이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예전의 치열했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그걸 그렇게까지 노력했었나' 하는 약간의 애잔함,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했던 경험이 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 섞여 좀 복잡한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이 작품에서의 히어로들도 싸울 당시엔 절체절명의 순간이였지만 모든 일들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웃음이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이라고 그 문제를 지나치거나 회피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문제, 상황, 목표가 있다면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경험을 쌓아 나에게 후회가 아닌 웃음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패해도 경험은 남지만, 회피하면 남는 것은 후회 뿐이므로.

 

 

최근 부산시립교향악단은 정기연주회 전에 먼저 교향곡을 먼저 선보이고 음악 칼럼니스트의 해석도 들을 수 있는 심포니야()와 협주곡 리허설을 볼 수 있는 미완성 음악회라는 예비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공연 리허설에서의 알록달록한 단원들의 옷차림도 즐겁고, 협연자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상호작용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서 최근엔 정기공연보다 미완성 음악회를 자주 보러 갔었다.

 

이번 공연의 협연자는 파가니니 콩쿨 우승자인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거기에다 바이올리니스트의 현란한 스킬과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하기 좋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니 관람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부산문화회관으로 향했다.

 

리허설 공연이지만 지휘자가 관객들을 위해 오케스트라가 협주자와 협주곡을 맞춰보는 과정을 설명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리허설 공연이지만 관객의 접근성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난다면 보기를 추천한다. 특히 이번 리허설에서는 협연자인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와 지휘자가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리허설 초반에는 협주곡의 거의 전 부분을 연주 해보고 파트별로 조정하고 후반에 또 3악장을 제외한 부분을 다 연주하는 식으로 리허설이 진행되었다.

 

무대 위의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오래 해왔고, 프로이신 분들이라 무언가 지휘자가 말하는 수정사항을 반영해 바로바로 소리가 변하는 것과 지휘자와 협연자 각자의 해석을 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정확히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이 곡을 저보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여러분이 더 잘 아시겠지만"이라고 말하며 연주자가 그동안 악기를 다루면서 이룬 것을 존중하는 말로 시작하는 점도 좋았다.

 

리허설인 미완성 음악회는 보았지만, 정기연주회가 있던 날은 일정이 있어서 관람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미완성음악회도 정말 좋았다.

 

파가니니 콩쿨에서 양인모가 연주했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영상을 덧붙인다. 나와 같은 감동을 누군가와 나눌 기회가 되길 바라며.

 

 

 

우고 론디노네전이 부산 국제갤러리에서도 개최된다는 소식에 다녀왔다이번 전시 nuns and monks by the sea는 동일한 전시명으로 서울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그렇게 동일한 전시 주제로 다른 공간에서 전시한 것은 작가가 둘 이상의 시공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작가가 의도하여 이뤄진 것이라 한다

 

우고 론디노네는 스위스 출신으로 지금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작가이다. 그는 조각, 회화, 사진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작품은 어느 사진에서 본 사람들(특히 SNS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고 론디노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색색의 돌을 쌓은 설치작품이다중국의 수석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색색의 돌 각각의 색채 대비도 강렬한데 황량한 사막 가운데 서있는 돌이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한다. 

 

Seven Magic Mountains, Public Art Production Fund and Nevada Museum of Art, Las Vegas, 2016

 

이번 부산 전시에서는 <mattituck> 이라는 연작이 전시 되었다. 일몰과 일출을 간단하게 3색의 색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우고 론디노네는 뉴욕 롱아일랜드 매티턱에서 그의 뮤즈이자 연인인 시인 존 지오르노와 지내며 감상했던 일출과 일몰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한다. 2019년 론디노네는 존 지오르노의 죽음 이후 이 시리즈를 그렸다고 한다. 그와의 추억을 영원히 작품으로 남기고 싶어서 였을까?

론디노네의 유명한 커다란 설치작품들과는 사뭇 다르게 아주 쁘띠한 사이즈였다그런 점은 재미있었고, 론디노네하면 떠오르는 거대작품을 만나지 못한 점은 아쉽기도 했다.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여진 시를 읽은 기억은 거의 없는데, 시인 존 지오르노라는 이름이 이상하게도 낯익어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그는 앤디워홀의 연인이었고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앤디워홀 최초의 영화인 <sleep>이 그의 잠자는 모습을 5시간 넘게 찍은 것이다. 교과서에서 배우던 앤디 워홀과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론디노네의 연인이자 뮤즈가 동일하다니 뭔가 신기했다. 그의 시도 언젠가 읽어보아야지.

 

Andy Warhol, Sleep

 

 

전시관을 나오면서 또 만난 론디노네의 작품 청석으로 만든 론디노네의 작품 <순종자>이다처음 <Human Nature>시리즈 작품을 미국 록펠러 센터 주위의 빌딩 숲에서 찍힌 사진으로 만났을 때는 굉장히 인상적이였다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대 빌딩들 사이에 마치 판타지 세계에서나 볼법한 큰 청석 인간들이 서있으니 그 대비가 강렬했기 때문이다이번에 실제로 만난 순종자는 큰 사이즈의 작품이였지만 풀밭 사이에 있으니 정말 자연과 자연의 만남이라 하마터면 그냥 거기에 있던 돌이구나 하고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Human Nature, Public Art Fund, Rockefeller Plaza, New York, 2013

 

예술가들이 전시할때 어떻게 전시할 것인지 채광은 어떻게 할 것인지까지 고려하여 전시를 하는지 더욱 이해하게 되는 경험이였다. 작품 뿐만 아니라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일 것이다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며 내가 어느 자리에 어울리고, 어느 곳에서 내 가치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2022.05.06

 

2015 차이콥스키 콩쿨에서 만장일치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마슬레예프의 리사이틀이 부산문화회관에서 있어 다녀왔다.

 

2019년 울산에서 그의 좋은 연주를 봤던 기억이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공연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전쟁이라는 큰 이슈가 일어났다. 현재 유럽에서는 러시아인 상임지휘자도 해고한다는데, 차이콥스키 콩쿨의 세계 콩쿨 회원자격도 박탈된 상황에서 내가 차이콥스키 콩쿨 우승자 러시아인인 이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보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가 하는 고민을 했다. 그의 연주는 좋았지만 양심은 가책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예술을 예술로만 생각할 수 없게하는 전쟁이 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주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였던 곡이라면 물론 1부 전체를 채웠던 차이콥스키의 사계였다. 멜로디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차이콥스키의 음악인 만큼 12개 소품 중 익숙한 곡이 많았지만, 이렇게 전곡을 한번에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차이콥스키가 표현한 12달의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느낌이었다. 차이콥스키 사계 중 6월과 10월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여러 연주자 버전 중 가장 자주 듣는 조성진의 차이콥스키 10월 연주 영상도 살짝 올려본다.

 

 

조성진, Tchaikovsky: The Seasons, Op. 37b, 10. October: Autumn's Song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내가 라벨의 곡을 좋아하기 때문에 라벨의 곡이였다. 정작 공연에서 맘에 들었던 곡은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이였다. 마슬레예프의 화려한 기교와 그 만의 해석이 그 두 작곡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공연을 보러가기 전 예상과 달리 라벨의 곡이 아닌 다른 곡의 여운에 잠겨 집에 돌아왔다. 이런 의외의 수확이 문화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의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 Recent posts